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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120년의 여정

전시기간
2017-12-12 ~ 2018-02-04
전시장소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전시실

전시소개

독립문을 세운지 12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독립문의 의미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축소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번 로비전시는 독립문의 역사를 통해 건립 전후의 시대적 상황과 그 의미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 마련하였습니다.

독립문은 누가, 언제, 왜 세웠을까

중국과의 주요 교통로였던 의주로에는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었다. 세종 즉위년(1402)에 홍살문의 형태로 처음 세워져 중종 32(1537)년에 한 칸 규모의 대문 형태로 새로 지어졌다. 이후 몇 차례의 중수와 수리를 거쳐 근대기까지 남아 있었던 영은문은 1895년 2월 허물어지게 된다. 개항 이후 열강의 힘겨루기에 휩쓸려 부침을 거듭하던 조선정부가 일본의 간섭을 받아 갑오개혁의 도중에 청의 종속을 끝내는 상징적인 행위로 철거한 것이다.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왕궁을 유린하기 시작했고 고종은 이를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고종은 그곳에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고 서재필의 『독립신문』 창간을 지원한다. 이후 정동클럽의 관료들은 이 독립신문을 통해 조선이 독립국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독립문과 독립관, 독립공원을 세워야 함을 역설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이를 추진한다. 건립비용은 독립신문을 통한 모금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부 관료와 왕태자, 일반 평민들에 외국인까지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하였다. 1886년 11월 20일 독립문 정초식에는 수 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이를 기념하였고 일 년 뒤 1887년 11월 준공되었다.

 

일제강점기동안 국내외 독립문의 사정

독립문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검열을 받는 대상이었고, 청일전쟁의 결과로 조선이 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물로 관광의 대상이 되었고, 고적으로 지정되었다. 그에 반해 국외에서 독립문은 독립운동단체들의 간행물 등에서 독립의 상징으로 활요되고 있었다.

 

도시개발로 자리를 옮긴 독립문

독립문은 1979년 문화재위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산대로의 건설공사에 밀려 서북쪽 70m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다. 의주대로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독립문의 역사지리적 가치가 훼손되는 순간이었다.

 

독립문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유물과 자료

이번 전시에서는 독립문의 정초식 기사가 실려 있는 『The Korea Repository』 와 『독립신문』, 영은문과 독립문 사진이 실린 근대기 외국인이 발간한 서적과 일제강점기의 관광엽서, 리플렛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독립문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소개하였다. 특히 영은문에서 오늘날의 독립문에 이르기까지의 독립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대형화면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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