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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생활유물도록6>수록
흥선대원군이 와룡관을 쓰고 학창의를 입은 채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 초상화이다. 그림 우측에 있는 친필 화제를 통해서 이 작품이 1869년에 이한철과 류숙이 화사를 맡고 한홍적이 장황을 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1869년에 제작된 <금관조복본>이나 <흑단령포본>과는 착용한 복식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얼굴 표현 등의 세부기법은 동일하다. 갈색의 짧은 선을 덧대어 그린 점이나 이목구비의 표현등을 볼 때, 역시 얼굴 표현은 이한철이 담당하고 의복은 유숙이 담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는 바닥을 이루는 배경이 없고 대신 화면 중앙에 탁자가 놓여 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시계, 안경. 향로와 연적 등을 통해서 문방청완 취향은 물론 좌측에 있는 환도를 통해서 위엄과 권위를 보이려 하고 있다. 교의, 협탁, 탁자 순으로 진한 갈색에서 황토색으로 색상이 밝아지고 있다. 간략한 의습선만을 그린 옥색의 학창의는 섬세한 기물의 표현과 대비되어 우아함을 더해 주고 있다. 배경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 앞에 장침을 놓아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안정감을 주고 있어, 더욱 눈에 띤다. 분홍색의 별지로 된 표지와 초상화함, 초상화보, 초상화함보와 향이 들어있는 향낭 1점 자물쇠가 부속구를 이루고 있다.

<소장유물도록 9> 수록
흥선대원군이 와룡관을 쓰고 학창의를 입은 채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 초상화이다. 그림 우측에 있는 친필 화제를 통해서 이 작품이 1869년에 이한철과 유숙이 화사를 맡고 한홍적이 장황을 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1869년에 제작된 <금관조복본>이나 <흑단령포본>과는 착용한 복식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얼굴 표현 등의 세부기법은 동일하다. 갈색의 짧은 선을 덧대어 그린 점이나 이목구비의 표현 등을 볼 때, 역시 얼굴 표현은 이한철이 담당하고 의복은 유숙이 담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는 바닥을 이루는 배경이 없고 대신 화면 중앙에 탁자가 놓여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시계, 안경, 향로와 연적 등을 통해서 문방청완 취향은 물론 좌측에 있는 환도를 통해서 위엄과 권위를 보이려 하고 있다. 교의, 협탁, 탁자 순으로 진한 갈색에서 황토색으로 색상이 밝아지고 있다. 간략한 의습선만을 그린 옥색의 학창의는 섬세한 기물의 표현과 대비되어 우아함을 더해 주고 있다. 배경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 앞에 장침을 놓아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안정감을 주고 있어 더욱 눈에 띤다. 분홍색의 별지로 된 표지와 초상화함, 초상화보, 초상화함보와 향이 들어있는 향낭 1점, 자물쇠가 부속구를 이루고 있다.

와룡관에 학창의를 갖추고 의자에 앉은 좌안 8분면의 전신 좌상
1863년에 그려진 초본을 바탕으로 흥선대원군의 나이 50세가 되는 1869년에 화원인 이한철(1812~1893 이후)과 유숙(1827~1873)이 합작하여 그림
탁자 위에는 서첩 위에 놓인 청화백자 인주함, 탁상시계, 용문양 벼루, 둥근 뿔테 안경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옆의 협탁 위에는 고동향로와 향 피우는 도구들이 놓여 있어 18세기 후반부터 유행했던 서화고동취미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음
와룡관학창의본, 계해년에 그려진 초본을 본으로 기사년에 옮겨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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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표시 예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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